아무거나 리뷰

[독서일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인생의 띠로리 2023. 8. 15. 22:10

영미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영미 작가는 제인 오스틴 정도?

주로 현대 한국 소설을 읽는다.

나와 비슷한 환경 비슷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독서모임에서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얇지 않은 두께인데 틈틈히 읽으니 3일만에 완독! 

그만큼 몰입감 있었다. 

주인공 카야는 습지에 산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엄마와 언니, 오빠들은 모두 떠나고, 

어린 카야의 유일한 가족이 된 아버지 마저도 습지를 떠난다. 

홀로 남은 카야는 유일한 이웃 점핑 아저씨에게 홍합과 생선절임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와중 습지 근처에 사는 테이트와 만나게 된다. 

그에게 글자를 배우고 다양한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와 지식을 나눈다. 

카야의 이야기와 교차돼 체이스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소방망루 늪에서 발견된 체이스의 시체 주변은 너무 깔끔하다. 

누군가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책을 어떤 소설로 정의해야할까? 

성장소설, 연애소설, 스릴러, 과학소설 

모든 장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초반엔 카야에 대한 연민으로 몇 번 눈물을 훔쳤고, 

중반에는 달달한 연애 이야기에 마음이 간지럽고.... 

(애들들 봐라 훗훗 눈을 초승달로 뜨고 봤다) 

마지막엔 어떻게(?) 살인사건이 마무리 되는 지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꼬마 돼지만 집에 남았어요 p25

정말 이 문장에 눈물 펑펑이었다. 조디가 떠난 후 

해변에서 나직히 말한 카야의 한마디. 

나만 집에 남았어요. 가 아니라 

꼬마 돼지만 이라는 3인칭 표현이 

이 사실을 나의 현실로 받아드리고 싶어하지 않는 

카야의 마음이 드러난 것 같아 너무 좋았다. 


갈매기들을 다 모아들고 포치로 데려가 같이 자고 싶었다.

따뜻한 깃털이 달린 포슬포슬한 몸뚱어리들과

한 이불을 덮고 자면 얼마나 좋을까.p45

나도 어디선가 백조가 새끼들을 날개 안에다가 (?) 넣어 놓고 

물가를 떠다니는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인가.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지는 날이면 

엄청 커다란 백조의 날개 안에 폭 파묻혀서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곤 해 공감이되었다. 

너무 포근하고 따뜻할 것 같아. 

나의 모든 것을 받아줄만큼. 
 
이상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테이트의 손목 안쪽에 있는

푸른빛 정맥들을 기억했다. p132

아니... 얼마나 자세히 봐야 ㅋㅋㅋㅋㅋㅋ 

정맥을 기억하냐구요. 

진짜 상대방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얼마나 손을 잡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잘 보여준다. 

카야는 아주 오래전 엄마가 언니들에게 

녹슨 픽업트럭을 과하게 튜닝해 몰고 다니거나 

고물 자동차의 라디오를 귀청이 떨어지게 틀고 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가치한 남자들이 시끄러운 법이거든." 

엄마는 말했다. p228

그냥 너무 웃기닼 ㅋㅋㅋ 너무 맞말이라서 

역시 엄마들은 다 알고 있다. 

허세가 심한 남자들을 조심해야한다. 

위 문장 바로 위나 나오는 논문 내용은 이렇다.

이들은 알파 수컷 주위에서 알짱거린다. 

알파 수컷이 주변에 모인 암컷들과 교미를 즐기느라 

바쁜 틈을 타 남은 암컷 중 한마리와 몰래 교미를 한다고 한다

. 이 것을 "음흉한 섹스 도둑" 이라고 한다. 

조류와 장엄한 노도와 이 모래사장이 공모해 

정교한 그물망을 짜낸 게 틀림없다. 

카야가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래톱의 각도와 부드러운 흐름이 

바람이 부는 반대편에 조개껍데기들을 모아서 

하나도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희귀한 조개 몇 종과 좋아하는 종들 

여러 개를 찾을 수 있었다. p265

아니 ㅋㅋㅋㅋ 체이스에게 사실 결혼 상대가 있고 

약혼까지 한 걸 알고 난 뒤 엄청나게 절망하다가 

시 한 편 읊고 나서 바로 나오는 내용이다.

 진짜 찐 덕후다. 

인생에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그냥 조개만 보이면 너무나 행복한 카야.... 

어쩜 좋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카야의 생물학 덕후 모먼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장면. 

음산한 빛살이 카야의 감방에 난 작은 창문으로 흘러들어왔다. 

카야는 꿈속의 지도자라도 따라가듯 

한쪽 방향으로 소리 없이 춤추는 먼지와 티끌을 바라보았다. 

그림자에 닿으면 먼지와 티끌은 사라졌다. 

햇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p341

아주 어둠고 깊숙한 방안에 한줄기의 빛이 비치는 

고요함. 적막함. 외로움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안에서 쭈구리고 앉아서 희망을 잃은 

카야의 모습이 그려져 좋았던 문장

 

영미 소설을 좋아한다면,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앞으로 영미 소설에 대한 편견을 조금 

내려놔야겠어.